1978년 시작된 슈퍼맨 시리즈는 당시로서는 놀라운 특수효과와 상징성으로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오늘은 영화 슈퍼맨 III (1983)를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인 《슈퍼맨 III (1983)》는 전작들과는 결이 확연히 다른 영화로 평가받습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히어로 서사에서 벗어나 코미디와 테크노 스릴러 요소를 과감하게 도입하며, 슈퍼맨의 인간적인 고뇌와 내면적 분열을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지만, 그 안에는 시대를 앞서간 주제 의식과 장르 실험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줄거리: 두 얼굴의 슈퍼맨, 갈라진 내면
《슈퍼맨 III》는 전작들과 달리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갈등 구조로 출발합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의외의 인물, 거스 고먼(리처드 프라이어)가 있습니다.
그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던 백수였지만, 우연히 자신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를 이용해 자신이 일하는 기업에서 돈을 빼돌리던 그는 결국 거대 기업가인 로스 웹스터의 눈에 띄게 되고, 그의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로 이용됩니다.
웹스터는 슈퍼맨을 제거하고 세계 경제를 조종하려는 계획을 세우며, 거스에게 인공 크립토나이트를 만들게 합니다. 그런데 완벽하지 않은 이 가짜 크립토나이트는 슈퍼맨의 힘을 약화시키는 대신, 그의 도덕성과 인격을 서서히 부식시키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은 우리가 알던 영웅적인 슈퍼맨이 아닌,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타락한 슈퍼맨’입니다. 그는 시민을 돕는 대신 무기력하게 행동하고, 정체성을 잃은 채 방황합니다. 이 타락은 단순한 외적 변화가 아니라, 슈퍼히어로의 정체성과 인간성의 분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고철 공장에서 벌어지는 슈퍼맨 대 클라크 켄트의 내면 전투입니다. 이 장면에서 두 인격은 실제로 분리되어 물리적인 싸움을 벌이고, 결국 클라크가 타락한 자신을 물리침으로써 본래의 슈퍼맨으로 돌아옵니다. 이 장면은 ‘자기 자신을 이겨야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명장면입니다.
출연 배우: 슈퍼히어로물의 코미디 실험
이 영화는 배우 캐스팅 면에서도 전작과 다른 방향성을 시도했습니다. 기존의 중후한 분위기 대신, 코미디의 거장 리처드 프라이어를 주연으로 내세워 전반적인 영화의 무드를 가볍게 설정했습니다.
• 크리스토퍼 리브- 이번 작품에서도 슈퍼맨과 클라크 켄트의 이중적인 역할을 훌륭히 소화합니다. 특히 ‘타락한 슈퍼맨’과의 이중 연기는 그가 가진 연기력을 다시금 입증하는 지점입니다.
• 리처드 프라이어 - 거스 고먼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영화에 유머와 인간미를 동시에 불어넣습니다. 단순한 악당도, 완벽한 선인도 아닌 회색지대의 인물로 묘사되며, 후반에는 영웅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입체적인 캐릭터입니다.
• 로버트 본 - 렉스 루터의 빈자리를 대신한 ‘기업형 악당’ 로스 웹스터 역을 맡았으며, 자본과 기술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현대적인 악당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 아네트 오툴 - 새로운 여성 주인공인 라나 랭 역으로 등장하며, 슈퍼맨이 아닌 클라크 켄트를 사랑하는 인물로 슈퍼맨의 ‘인간적인 삶’에 대한 갈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관전 포인트: 실험적인 이야기와 철학적 메시지
* 슈퍼맨도 흔들린다 – 영웅의 내면 분열
이 영화의 핵심은 슈퍼맨의 내면적 갈등입니다. 그는 전작들처럼 강하고 정의롭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 외부 자극에 의해 자신을 잃고 방황하는 불완전한 인간으로 그려집니다.
그가 자기 자신과 싸우는 장면은 슈퍼히어로 영화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시퀀스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는 단지 초능력을 가진 자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는 내적 갈등을 투영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 기술 공포의 선구적 묘사 – 슈퍼컴퓨터의 위협
후반부 등장하는 슈퍼컴퓨터는 단순한 기계적 위협이 아닙니다. 인간을 초월하는 계산 능력과 자율성을 가진 이 존재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1980년대 기술 공포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거스 고먼조차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슈퍼컴퓨터는 오늘날 에이아이 윤리 문제와도 연결되는 흥미로운 주제를 던지고 있죠.
* 인간적인 사랑 – 라나 랭의 등장
이번 작품에서는 로이스 레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대신 클라크의 고향 친구인 라나 랭이 새로운 여성 주인공으로 나섭니다. 그녀는 슈퍼맨이 아닌 ‘평범한 클라크’를 사랑하며, 이들의 관계는 진짜 나를 봐주는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슈퍼맨이 아니라 클라크 켄트로서의 삶에 대한 동경이 더욱 깊어지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슈퍼맨 III》는 전통적인 슈퍼히어로 영화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실험적인 시도로 가득한 작품입니다. 코미디와 철학, 기술과 인간성, 타락과 구원의 이야기를 담으며, 단순한 히어로 무비를 넘어선 풍자적이고 상징적인 작품으로 자리잡고 있죠.
물론 지나치게 가벼운 분위기, 중간중간의 유머가 전작의 진중함을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이 작품은 히어로 장르가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매우 흥미로운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히어로란 항상 강하고 멋지기만 해야 할까요?
《슈퍼맨 III》는 그 질문에 ‘아니오’라고 말하며, “인간적인 슈퍼맨”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제시합니다.